시작은 모리사와 치아키, 그 자신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 한명이 꽤나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연인과 헤어진 것을 발단으로 동료들 사이에서는 관계의 끝에 대한 얘기가 돌고 돌았다. 비단 연인관계의 끝 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의 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평소 끝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서 만큼은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에 참여했다. 끝은 언제 찾아오는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고해야 하는가, 등등. 사실은 살아가면서 이따금 해볼 법한 생각들이었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카미네 미도리와의 끝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 했다. 그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이고, 상대방이 원하는 끝..
‘타카미네’ 가디건을 걸치고 휴대폰을 챙긴 후 현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선배의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묶였다. ‘잠깐, 나를 좀 봐 줘.’ 머뭇거렸으나 뒤를 돌아 선배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렇게 마주보고 있기를 잠시, 선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이라 반응해야 하나.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그 뒤에 선배는 다시 못을 박 듯 말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까 무슨 말을 했더라. ‘이제까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가 무엇 때문에, ‘괜찮아.’ 싸웠더라. ‘미안하다 타카미네.’ 역시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알아줘.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형태가 마냥 아름답지는 못한 것 같다만.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얼굴..
여름 해가 몇 시간을 내리 쬐어 신을 신은 발을 올려 두기만 해도 열기가 후끈 올라와 다리를 뼈 째로 녹여버릴 듯 달궈졌던 아스팔트 도로가 서서히 식어갈 즈음, 모리사와 치아키는 보도 위 작동이 중단된 분수대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의 야외 데이트에 폭주하는 심장박동을 잠재우기 위해 약속장소까지 오늘 길 내내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은 빼둔 상태였다. 고개를 들어올려 시계탑을 잠깐 쳐다본 치아키는 10분 남은 약속시간을 확인하고 시선을 시계탑 너머 주황빛 보랏빛이 섞여 노을지는 하늘에 두었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눈을 살짝 감고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자전거 바퀴 체인이 돌아가는 소리, 저 멀리서 까르르하고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