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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모리사와 치아키, 그 자신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 한명이 꽤나 오랫동안 사귀어 왔던 연인과 헤어진 것을 발단으로 동료들 사이에서는 관계의 끝에 대한 얘기가 돌고 돌았다. 비단 연인관계의 끝 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의 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평소 끝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서 만큼은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에 참여했다. 끝은 언제 찾아오는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고해야 하는가, 등등.
사실은 살아가면서 이따금 해볼 법한 생각들이었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카미네 미도리와의 끝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 했다.
그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이고, 상대방이 원하는 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입 안이 버석거리기 시작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날 어떻게든 타카미네 미도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싶었다. 최근 식사를 함께 한 것이 언제였더라,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둘은 바빴다. 식사도 따로, 잠도 따로. 그 정도로.
하지만 둘은 식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방으로 들어갔으며 혼자 남겨진 모리사와 치아키는 2인분의 식사를 다 처리하지 못하고 남은 음식을 버렸다.
현관에서 침실까지 타카미네 미도리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모리사와 치아키와 나눈 대화는 30초조차 채울 수 없는 몇 문장이 고작이었다.
그 사이 모리사와 치아키의 안에서는 무언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렇게 타카미네 미도리가 문을 열고 나간 뒤 간단히 씻고 침실로 들어섰다. 오늘 밤과 새벽, 비가 내린다고 했다. 습해질 공기를 생각하며 도로 밖으로 나가 어딘가에서 나뒹굴던 제습기를 꺼내왔다. 이제 에어컨을 틀 날씨는 아니었다.
이 상태에서 제습기를 틀겠다고. 정말로 산산이 부서져 흩날려 날아가버릴지도.
작정하고 이야기한 것이었건만 이제와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저는 계속 사랑할 것이지만 꼭 저를 사랑해줄 필요는 없다고.
물론 전자를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부담스러워하지만 않았음 좋겠다.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은 질척거렸다.
허나 우리의 관계는 질척하기는 커녕 메말랐다.
그래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역시 옳았던 거지. 괜찮아. 지금의 내가 괜찮을 리 없지만 상대방에게는 그렇게 말해줬어야 했고 그렇게 말했다.
들려오는 퍼석거리는 소리에 제 늪에 빠져 몸부림치는 자신이 있었다.
창문 위로 미끄러져 내리는 물방울이 아니라 천 위로 스며드는 무엇인가가 되었음 하고 바랐다.
메마르지 않고 푹 젖어서 달라붙는 옷처럼.
비는 차라리 산뜻하기라도 하지.
그래서 이불을 붙잡고 울음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꺽꺽대는 울음소리를 이불 속에 쏟아내다 잠이 들었다.
“…나 아직 선배 많이 좋아해요.”
바스러져 가던 흙먼지 위로 가을비가 내렸다.
땅에 고인 물 웅덩이 속의 흙이 질퍽거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렸잖아.
비가 그치면 질퍽거리던 흙은 딱딱하게 굳어버릴 것이다.
이제는 아까와 같은 식으로는 못 놔줘.
떠나간다고 생각한 너에게 널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한 시점에서 이미 들켜버렸지만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다음 날 타카미네 미도리는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이야기했다.
끝을 보더라도 함께 바라보자고.
모리사와 치아키는 지난 새벽 타카미네 미도리를 끌어안으며 했던 생각을 다시 고쳤다.
결국 네가 원한다면 나는 어제와 같이 널 보내줄 것이라고.
모리사와 치아키가 끝을 고하는 방식은 저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대를 한없이 위하면서도 이기적이었고, 마지막까지 상냥하면서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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