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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 스타즈

みどり

Rache_ 2020. 6. 27. 04:30

야채절임이 맛있는 내 단골집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

 

 

 

 내가 자주 오는 이 선술집의 주인은 은퇴한 연예인이다. 이 사실은 언젠가 술에 꼴아서 우리 집에 들이닥친 주제에 2차를 외쳐대던 친구 덕에 알게 된 사실이다. 평소 연예계에 관심이 많던 친구는 술을 더 달라며 징징대는 그 입을 막기 위해 데려간 내 단골집에서 단숨에 술기운을 떨쳐내고 내게 귓속말로 사장님의 정체를 까발렸다. 카운터 뒤에서 칼질하고 있는 저 꽃미남을 보고도 여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냐며. 그 자리에서 사장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취미도 일도 연예계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로서는 갑작스레 단골집 사장님의 개인정보를 턴 기분이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긴 해서 호기심이 동해 그 자리에서 폰으로 검색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검색 결과 프로필 사진을 보니 사장님이 맞았다. 처음 보았던 날 감탄했던 신장도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올만한 숫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별 볼일 없는 이런 동네에도 연예인이 사는구나 싶었다.

 

 저녁 때가 지나고 나서야 열리는 이 가게는 사장님이 직접 오픈을 준비한다. 내가 오픈부터 이 가게에 죽치고 앉아 술을 퍼마셔서 아는 건 아니고, 애매한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내 퇴근길에 위치한 가게라서 몇 번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사장님을 뵌 적이 있다. 처음 가게에 들어선 날도 퇴근 중이었다. 배가 고팠고 마침 시원한 맥주 한잔이 당기는 날이었으므로 그 날의 영업을 시작한 듯 보이는 그 가게로 들어간 것이 처음이었다. 

 

 오토시로는 항상 츠케모노가 나온다. 이 츠케모노는 내가 자주 걸음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마음 같아서는 좀 싸가도 되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간이 내 취향이다. 특히 더운 여름날 입맛 안 도는 아침에 밥이랑 같이 먹기 딱인데. 언젠가 다른 손님이랑 사장님이 내가 살아오며 먹어본 것 중 최고인 이 다양한 야채 절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야 요리에 문외한이니 사장님이나 직원에게 이 집 절임 참 맛있네요 한 마디 칭찬이 고작이었지만 그 손님은 좀 더 자세히 절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때 사장님께서는 츠케모노를 매일 새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오토시로 제공한다 했다. 애초에 많이 만들지도 않고 남는 건 본인이 먹는다 했나. 사장이 타카미네 미도리라는 알게 되면서 그의 부모님이 야채가게를 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절임 재료는 역시 본가에서 받아오는 걸까. 

 

 타카미네 미도리.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생각나지 않은 것은 단순히 내가 아이돌이든 배우든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성대는 들어본 적이 있다. 액션물은 종종 보곤 했던 내게 유성대의 모리사와 치아키와 나구모 테토라는 익숙한 배우였다. 유명한 액션 배우란 배우는 전부 나온 것 같은 액션 영화가 있었는데,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차라리 모리사와 치아키가 주연이었던 전대 시리즈 극장판이 더 흥행했다) 나는 그 영화를 봤었고 꽤나 화려하게 뽑힌 포스터에서 유성대의 그 둘이 출연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전대물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사실 모든 세대가 그랬겠지만) 유성대는 뭔가 그리운 느낌이 들게 했다. 아, 전대. 그때 xx레인저 좋아했지. 뭐 이런 류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컨셉이었달까. 정작 노래는 지나가다 듣는 수준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잘 나가는 아이돌이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할 정도니 말 다했지. 사장님 필모를 보니 내가 사장님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활동 기간에 비해 우선 얼마 없는 필모도 멜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외엔 어떤 감독의 실험작에 가까워 보이는 단편 몇 편에 잔잔한 휴먼 드라마 몇 편. 내가 억지로 친구 손에 이끌려 영화관에서 봤다 하더라도 곯아떨어졌을 법한 내용의 영화들이었다. 스릴러가 한 두 편 껴있긴 했지만 액션은 좋아해도 스릴러는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보지 않았을 뿐이지 엄청 잘 나갔었던 것으로 보였다. 친구 왈 아이돌 외에는 모델 활동을 제일 활발히 했다고 한다. 사장님이 권두를 맡은 잡지가 있다, 보여줄까 묻는 친구를 거절했다. 내가 폰으로 좀 검색하는 거랑 찾아보는 거랑 차원이 다른 느낌이지 않나 그건. 굳이 품을 들여서 과거를 캐는 기분이잖아. 

 

 유성대 멤버였다는 걸 안 뒤로는 새삼스레 달라보이는 부분이 가게에 있다. 예를 들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선곡 기준. 처음에는 무슨 음악 라디오라도 틀어놓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지난 동료들에 대한 예의인가요, 평범하게 이 나라 국민이면 모두가 아는 국민가요 사이사이에 그 시절 아이돌 노래들을 랜덤 재생해두는 것 같다. 어쩐지 장르가 다양하더라. 

 

 사장님은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손님들에게 말을 먼저 걸진 않는다. 나도 오랜 친구가 아닌 이상 몇 시간씩 상대방을 붙들고 수다를 떨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런 점이 편했다. 그런 사장님이 말을 많이 하는 날이 있다. 와 이걸 몰라봤다니, 진짜 말도 안 되네. 나구모 테토라가 가끔 가게에 오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성대 멤버가 자주 가게에 놀러 와 일꾼을 자처한다. 놀러 오는 게 아닌가? 

 이 가게는 몇 개의 고정메뉴 외에는 매번 메뉴가 바뀔 정도로 음식이 다양하다. 매일의 추천 메뉴도 바뀌는 편인데 유성대 멤버가 오는 날은 대충 추천 메뉴가 짐작 가능하다. 일단 확실한 것은 푸른색 머리칼에 녹안을 지닌 멤버가(나중에 알았지만 신카이 카나타라는 멤버였다) 오는 날에는 사시미 모듬이 추천 메뉴가 된다. 이건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이벤트인 것이, 사시미는 사장님이 카나타 선배라고 부르는 그 오묘하게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가게에 나타나는 날 외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메뉴이다. 사장님은 날달걀 외의 날 것을 가게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아, 야채도 제외. 살면서 가장 가까이서 회치는 모습을 본 날이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신카이 카나타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해체가 끝난 생선을 밑에 두고 여전히 칼을 든 채로 날 향해 웃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말없이 그 상태로 눈을 마주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게 사시미 모듬을 시켜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했다. 그제야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런 게 아이돌, 연예인 파워인가. 그리고 사시미는 맛있었고 다른 가게에 비해 파격적으로 쌌다. 사장님 옆에서 자꾸 내게 간장에 찍어먹을 것을 권유하는 그는 여전히 어딘가 신기한 사람이었지만. 

 나구모 테토라를 못 알아봤다니. 생각해보면 수많은 연예인들이 뭐 자기 집에서만 죽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텐데 만날천날 여기서 A씨를 봤어요! B씨를 봤어요! 그런 소식이 수십 개씩 쏟아지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건가. 분명 나처럼 연예인에게 관심도 크게 없고 눈썰미도 별로인 사람들이 많이 있어 이 세상은 덜 시끄럽게 굴러가는 것이겠지. 나구모 테토라가 오는 날은 평범하게 야끼토리가 추천 메뉴가 되는데, 사장님이 구워주는 것과는 맛이 천지 차이이다. 사장님은 조금 달짝지근한 소스를 사용하고 촉촉하게 고기를 굽는 편인데 나구모 테토라가 구워주는 것은 소금 후추 간에 겉이 아주 바삭하다. 뭐랄까, 고기구이의 정석 느낌이다. 작은 고깃 조각에서 그런 숯불구이 맛이 강렬하게 난다. 나구모 테토라가 있는 날, 손님이 와서 추천요리를 물어보면 야키토리라고 순순히 말하는 사장님이지만 정작 고기를 굽는 당사자 옆에서는 끊임없이 잔소리한다. 아직까지 네가 불 쓰면 불안하단 말야. 아 그럼 그냥 네놈이 구우십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손님 들어왔슴다, 가봐여. 으음 소화기는 이쪽에 있어... 아 좀!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평소에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쉽게 체감하는 것이지만 나구모 테토라랑 있을 때가 제일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구모 테토라는 그 중 가장 그나마 자주 오는 편이고 그다음이 신카이 카나타. 나머지 두 멤버는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센고쿠 시노부는 나구모 테토라와 온 적이 있으나 딱히 사장님과 함께 요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개구리 구이 얘기를 하는 사장님과 나구모 테토라가 혼이 나는 듯한 모습은 봤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이밍이 안 좋은 건가. 내가 있을 때 온 적은 없다. 대신 내가 마감 시간 직전까지 마시던 날, 사장님이 전화를 받고 감자 고로케를 튀기는 걸 본 적이 있다. 통화 중에 상대방을 모리사와 선배라 부르는 걸 얼핏 들었다. 그 날 가게는 한산했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 사장님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은퇴했고, 연예계 짬이 차면 이런 여유가 생기는 걸까. 유성대 멤버들도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거리고 통화할 때도 별로 조심하는 기색은 없고. 유명인사와 일반인 사이의 거리감을 모르겠다. 

 

 가게에는 손님이 적당히 오는 편이다. 그닥 붐비지도 않고 항상 텅텅 비어있지도 않다. 잠깐 주문이 끊겼을 때 카운터에 기대어 휴대폰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역시 잘생기시긴 했다. 나이도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편인 데다 듣기 좋은 미성이다. 편견이지만 뭔가 이런 선술집보단 바의 바텐더가 조금 더 어울리는 비주얼일지도. 다시 생각해보자니 바텐더를 했다면 사장님 표 츠케모노는 내 인생에 없었을 것이다. 사장님이 술집을 해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가게 이름이 '미도리'이다. 이름 짓기가 어지간히 귀찮으셨던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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