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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2 치아미도 교류회 주최자분, 참가자분들 모두 너무 감사드립니다!(ㅠㅠ)

 

리온찌(@rion_desu)가 만들어주신 표지 넘 감사합니다 엉엉 당신은 천사

 

많이 피곤한가?”

 

꿈과 현실 그 사이를 넘나들며 꾸벅꾸벅 졸던 나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정신을 차렸다.

 

, ... 조금.”

 

사실은 재미없어서 지루한 거지만.

 

조금만 참아봐라, 맨 앞에서 졸기엔 좀 그렇지 않나..!”

노력해볼게요...”

 

대답에 이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자 모리사와 선배가 내 한 손을 잡아채고는 책상 밑으로 가져갔다. 길게 늘어지던 하품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작게 비명을 내질렀다.

 

...!”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장난해요? 그렇게 꽉 쥐면 당하는 사람은 아프다구요.”

미안. 하지만 뽀뽀로 깨울 수는 없지 않나.”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그리고 네 혈액순환에도 좋다!”

이제 조용히 해요.”

알았다.”

 

선배는 금세 입을 다물고 주의소재를 다시 강의로 돌렸다. 강의실 맨 앞에 앉아있었던지라 필름 노출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교수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사진 찍는 기술에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나로서는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는 그저 그런 톤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졸음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버티기 위해 여전히 내 손을 놔주지 않는 선배를 힐끔거리며 구경하며 딴 생각을 했다. 선배는 책상 위 펼쳐둔 노트 위에 열심히 필기를 하며 펜을 쥐지 않은 손으로 이따금씩 내 손을 주물렀다. 더는 졸지 않게 하기 위함인 듯 했다.

 

선배에겐 얼마 전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주셨다 했나, 옛날에 받았던 거지만 본가에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해 이제야 꺼내보게 되었다며 보여준 카메라는 내게 익숙한 형태의 물건이 아니었다. 요즈음에는 그렇게 버튼이 조잡하게 달린 수동식 필름 카메라보다는 화면이 달린 디지털 카메라가 흔하고, 촬영 현장처럼 덩치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보다는 가볍게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니까. 그리고 선배는 그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특촬 주연을 맡게 된 이후로 모리사와 치아키라는 배우 앞으로 일감이 쏟아졌다. 선배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이 종영된 뒤에 줄을 선 스케줄을 프로답게 쳐냈다. 개중에는 잡지관련 일도 적지 않았다. 어느 한 촬영장에서 만난 상업 사진작가가 선배의 최근 관심사를 듣고는 제법 흥미로워하며 대학교수로 있는 자신의 지인을 소개시켜주었다나. 마침 그 교수가 필름 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연다 했단다. 운 좋게도 선배의 스케줄 표는 이제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언제나 일정상 선배보다 여유로웠던 나는 이번에도 역시 여유로웠다. 굳이 선배와 함께 도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한다면, -선배는 청강이라고 외쳤지만 우리는 그 학교 학생이 아니므로 선배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냥 선배랑 같이 있고 싶었다가 그 이유이다. 최근에 워낙에 선배가 바빠 같이 있을 시간도 얼마 없었고 선배의 새로운 관심사에 나도 좀 공감해 줄 수 있게 될까 싶어서. 별 소득은 없는 것 같다. 역시 지루했다.

 

타카미네.”

?”

같이 와줘서 고맙다. 솔직히 지루하지 않나.”

, 그렇긴 한데안 잘 테니까 다시 강의나 제대로 들어요. 저 신경 쓰지 말고.”

끝나고 오랜만에 데이트하러 가자. 봐둔 곳이 있다!”

네네.”

강의도 좋지만, 이렇게 타카미네랑 같이 수업을 들을 일이 없지 않았나! 새로워서 좋다.”

새롭긴 하네요. 저 이렇게 앞에서 수업 같은 거 들어본 적이 없어서. 키 때문에 만날 뒤로 밀렸거든요. 딱히 앞에서 듣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대학교를 왔다면 타카미네와 이렇게 같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었을까. 듣자하니 대학교는 학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은데, 선배도 나도 대학교에 갔으면 서로 다른 학교 갔겠죠. 제 성적 몰라요?”

으웃.”

부정도 안하네.”

타카미네는 공부 못해도 대단하니 괜찮다!”

그냥 조용히 하고 강의나 마저 들어요.”

잘 듣고 있다!”

 

정말로 함께 이런 수업 같은 걸 들을 일은 아마 없었겠지. 오늘이 아니었다면. 고등학생 시절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받아냈던 교복을 입은 선배가 어떻게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을지 흘낏 눈을 굴려 보이는 선배의 옆모습을 기준 삼아 상상해본다. 여전히 동안이라 세간에서 평가받는 얼굴이지만 그 시절보다는 조금 살이 빠진 걸까. 앳된 모습이라 보기는 힘들다. 뭔가, 옛날의 선배를 떠올리며 비교를 하자니 아침에 면도를 하는 선배를 처음으로 보았던 날이 생각난다. 그것도 내 눈에는 어색했지. 선배가 면도에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배가 능숙하게 면도날을 움직이는 그 상황이 내게 어색했다. 선배는 면도를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실제로도 자주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선배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배우는 모습은 낯설다. 유성대의 대장으로서의 선배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무대 기획안을 작성해 학생회에 제출했으며 신카이 선배와 함께 우리를 가르쳤다. 농구부 주장으로서의 선배도 농구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나를 포함해 다른 부원들에게 룰을 설명해주고 손수 동작 시범을 보이며 기초부터 가르쳤다. 훈련코스 역시 혼자 짜왔을 것이다. 보통의 선배는 내 공부까지 봐주었다. 나는 정말로 선배가 가르치는 모습만 봐왔을 뿐이다.

바지런하게 팬을 쥐고서 움직이는 손은 성실한 학생 모리사와 치아키 그 자체이다. 빠른 속도로 종이를 채우는 글씨는 생각보다 정갈하고 그리 굵지 않으면서도 조금 길쭉길쭉하다. 선배는 유성 볼펜을 자주 사용한다. 연필과 잉크 펜보다는 덜 번지면서도 선명하게 잘 나와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학생이었던 선배는 교실에서 연필을 더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강의 내용을 듣는 척 열심히 딴 생각을 하다 보니 졸다 깬 것처럼 시간이 훌쩍 날아가 있었다. 교수의 인사에 이어 학생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강의실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선배는 잠시 기다리라며 내 손을 놓고 앞으로 나가 교수와 인사를 했다. 선배가 마스크를 조금 당겨 내리고 모자를 슬쩍 들어 올리며 무어라 말을 하자 교수가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았다.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고 금방 끝이 났다. 선배는 다시 마스크와 모자를 바로하고 교수에게 인사한 뒤에 내게 뛰어왔다. 달려온 선배를 따라 이동한 교수의 시선 덕에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봤을까, 잘 모르겠지만 짧게 목례하니 미소가 돌아왔다. 사진을 찍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훑어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선배와 나는 캠퍼스를 빠져나와 오랜만에 야외 데이트를 했다.

 

강의는 한 번 뿐이었지만 선배는 그 뒤로도 학교를 들락날락거렸다. 그리고 사진 인화까지 직접 본인이 해보고 싶다고 교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암실이 딸린 사진관을 소개시켜주었다고 했다. 접점이라곤 선배의 촬영장에서 만난 사진사의 지인이라는 공통점뿐일 텐데 어째서 선배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풀어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적극적인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당해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열정에 매료되었을 수도 있고 사람이 좋은 걸 수도 있고. 그만큼 선배는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특강을 끝으로 사진을 배우러 다니는 선배를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지만 순순히 선배의 카메라 렌즈 앞에 서 주었다. 초짜인 선배가 찍는 인물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유일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사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선배는 사람보다는 다른 것들을 많이 찍었다. 연습을 위해서는 자연광 속에서 찍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인도어파라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거라 짐작해본다.

 

타카미네- 여기 와 봐라!”

왜요?”

여기랑 여기, 그리고 이 즈음에 사진을 걸어둘까 하는데 괜찮나?”

저야 상관없는데... 못질해야겠네요.”

그렇지.”

해도 되나?”

이제 우리 집인데 안 될 이유가 있나!”

선배가 찍은 사진 걸어두게요?”

. 조금 더 능숙해지면!”

즐거워 보이네요.”

으음. 본가에도 사진이 많았거든.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이라 어머니와 내가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었지만 집 안 곳곳에 사진이 있으니까 다 같이 모여 있지 않아도 따뜻한 느낌이랄까, 그게 좋았다. ‘우리 집이구나!’ 라는 느낌이 팍 와서 말이지!”

그래요?”

나와 타카미네의 집이니까 그런 느낌을 내고 싶다. 함께 하려고 장만한 집이지만, 일정이 안 맞아서 혼자 있게 되는 때가 많은 공간이니까.”

저 없을 때 집에서 외로웠어요?”

, ,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딱히 뭐라고 하려던 건 아닌데 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건지. 고개를 끄덕여주자 선배가 웃었다. 내 유년시절의 경우 부모님의 직장이 집이었던지라 선배의 유년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있다가도 계단을 내려가면 언제든지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었고 머리가 어느 정도 큰 뒤에는 가게 일을 함께 했다. 가게는 말 할 것도 없고 집 안에도 딱히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거나 하지 않았고 책상 위 액자도 별로 없었다. 겉보기에는 두께가 어마어마한 가족 앨범도 형과 나의 어렸을 적 사진이 대부분이지 우리 둘 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채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 의외로 비디오는 많을지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외에도 학부모 참관일과 같은 자잘한 학교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한 우리 부모님은 캠코더를 꼭 들고 다니셨다. 정작 그 기록물을 내가 돌려본 적은 없지만 가끔 식탁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부모님은 가끔 보시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디테일한 이야기가 나올 리 없지. 어쨌든 내 본가는 사진이 가득한 집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근데 선배가 찍은 사진이면 제 사진 밖에 없겠네요.”

그렇겠구나.”

, 그건 별로인데.”

그런가...”

예전에는 선배도 그럼 선배 사진에 둘러싸여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 내가 찍힌 사진이지만 나를 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 눈에는 내가 이렇게 행복해 보였겠구나, 싶어서 사진에는 비록 나 혼자 뿐이지만 카메라 뒤의 사람 역시 보이는 느낌이다.”

그럼 선배를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사들이 생각나고 그래요? 활동할 때 팬이 찍은 사진을 보면 팬이 생각나고?”

아아, 일이랑은 조금 많이 다르지. 내가 내 일을 사랑하는 것이나 팬들의 애정을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만, 우린 서로를 더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가끔 선배는 훅 치고 들어와서 듣고 있던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얌전히 선배가 찍어올 사진을 기다리기로 했다.

 

선배가 찍는 사진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함께 여행할 때 카메라를 동반하는 경우는 아주 가끔이었다. 우선 짐이 많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사진 찍는 것에 열중하게 되면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나. 나와 함께하는 순간에 다른 행위를 하고 싶지 않단다. 사진 찍는 걸 취미로 삼은 사람이 해도 될 말인가 이게. 또 초반에는 대놓고 내게 렌즈를 들이밀어 내 동작을 멈추게 했다면 이제는 굳이 내가 카메라를 의식하게끔 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자고 있는 얼굴을 찍어 와서 걸어두겠다고 하는 걸 뜯어 말렸다. 그런데 선배가 그 사진을 너무 좋아해서 액자에 넣어 침실에 두는 것으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개인적인 사진을 손님이 올 수도 있는 방 밖에 걸어두겠다고 한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선배의 찍는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말이 그 사진을 보고 조금은 이해가 갔다. 사진을 봤을 때 따뜻하다고 느꼈다. 평화롭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좀 진득하기도 하고. 이거 찍기 전에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겠지.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아마 침대에서 슬쩍 내려와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겨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서 찍었을 것이다. 상황을 생각하다보니 좀 변태 같기도 하네. 행복해보였다. 자고 있는 내가 그래보였다기보다는 그걸 찍은 사람이 사진 너머로 느껴졌다.

 

출사를 나간다기에 따라 나선 날이 있었다. 선배는 나와 휴일이 겹치면 카메라를 드는 대신 나와 시간을 보내는 쪽을 택했다. 그날은 원래 있던 내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집에 금방 돌아오게 된 날이었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선배는 연락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당황했다. 내가 아프다는 등의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된 뒤에는 안심하는 듯 했지만 나를 두고 나가는 대신 같이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하길래 냉큼 내가 선배를 따라가겠다 말했다. 흔쾌히 오케이한 선배의 차를 타고 도착한 예술촌은 사진관에서 사진명소로 추천받은 곳이라고 했지만 내 마음에도 쏙 드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단정한 건물들의 모습도 마음을 편안해주는 매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귀여운 인형이 많았기 때문이다. 홀린 듯이 가게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 샌가 선배가 나를 찍으며 웃고 있었다. 지역 특산물이라는 주전부리를 입에 하나씩 물고 열심히 돌아다니다 해가 질 때 즈음에 다시 선배의 차를 타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타카미네에게도 즐거운 곳이었던 것 같구나!”

그렇네요.”

오늘 같이 오지 않았어도 다음에 네게 놀러 오자고 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선배가 날 데려가는 곳은 대부분 내 취향에 맞는 장소였던 것 같다. 새삼 그간 다녔던 여행지를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는 동안 선배는 사진관 앞에 차를 세우고 내게 암실에 들어가 보겠냐고 물었다.

 

아니면 바로 저녁 먹으러 갈까?”

작업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다만 급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오늘 사용하겠다고 말을 해놔서 얼굴은 비춰야 할 것 같아서 온 거거든.”

들어가 볼래요.”

배는 안 고픈가?”

저는 아까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어서 그런지 별로. 선배는?”

나도 괜찮다!”

 

그래서 선배를 따라 들어간 암실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엄청 좁고, 빛이 있네요.”

하하, 그렇지? 그래도 여긴 두 사람 다 들어올 수 있으니 마냥 좁은 편은 아닐 거다.”

암실은 빛 한 줄기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흑백 사진은 암등을 켜놓고 작업해도 괜찮다.”

좀 어두운 정육점 같아요.”

! 정육점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오늘 찍은 건 흑백사진이에요?”

아니. 그래서 그냥 책상 위에서 작업하면 안 되고 이 가방 안에 손을 넣고 작업해야한다. 그런데 오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왜요?”

하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데 타카미네가 있지 않나! 집중 못 하면 어떡하지!”

그게 뭐에요... 뭐 도와줄 건 없어요?”

... , 타이머를 맡아다오! 내가 필요한 시간을 말해 줄 테니 타카미네가 딱 그만큼 재준 뒤에 내게 이야기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하면 타카미네랑 이야기하면서 작업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군! 신난 목소리로 선배가 책상 위 거대한 가방 안으로 카메라와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직접 보니까 또 신기하네.

 

선배 저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물론!”

왜 디지털이 아닌 필름이에요? 요즘엔 폰 카메라도 성능 좋고 인화도 다 해주잖아요.”

으음,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내가 이 과정을 좋아하게 된 건... 필름은 인간의 기억과 가장 비슷하다 생각하기 때문인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기도 하고 내가 바라는 만큼 제일 사실에 가깝게, 아니면 제일 예쁘게 간직하려고 조절하려고 하니까. 컴퓨터로 편집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변수가 더 많다는 점에서 신중해지기도 하고, 작업하는 동안 좀 더 기억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시간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아요?”

... 여기에 쏟는 시간이 즐거워서 상관없다!”

오늘 내 사진 몇 장 찍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는구나!”

몇 장?”

당연히! 셀 수 없다! 대부분 타카미네 사진일 것 같은데.”

당당하네요.”

안 될 것 없지 않나! 분명 너도 맘에 드는 사진일거다. 오늘 엄청 예뻤거든.”

“...어떻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런 얘길 할 수 있지.”

사실이자 진실이기 때문이지!”

 

선배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재주라는 단어와 우리 둘 모두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선배가 나보다는 조금 더 섬세한 손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고쳤다. 취향의 섬세함과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난 특촬이 섬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그날 선배가 인화한 사진은 지금 거실에 있는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인형을 보고 웃다가 선배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찍은 사진인지 내가 엄청 활짝 웃고 있다.

 

나에겐 선배처럼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고 스캔하는 번거로움을 즐길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선배는 내 눈에도 즐거워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 역시 그날 고즈넉한 분위기의 건물을 바탕으로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는 선배의 모습을 휴대폰을 꺼내 찍었다. 당사자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화면 속에서 선배는 나와 함께 한다. 나에게 사진이란 선배의 사진과는 많이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피사체라는 점, 그 사실만은 아마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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