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 모금만 더 마시면 난 죽을 거다.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모리사와 치아키는 술집에 딸린 화장실 안의 세면대 위 거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분명 술 깰 겸 물 좀 묻히려 했던 것 같은데 깜빡깜빡 곧 점멸할 듯한 의식 사이로 눈에 힘을 주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 결과, 몸엔 물 한 방울 안 묻어있고 저는 고개를 밤공기에 시원해진 거울에 이마를 대고 진탕 술에 절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숨이 거울 표면을 타고 도로 제 얼굴로 올라와 다시 한 번 더 코로 술을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자 간신히 이마를 거울로부터 떼어내었다. 이 정도로 마시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본 동창들의 얼굴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긴장이 완전히 풀려있던 모양이다. 집에 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캬-” “우와, 완전 아저씨같은 감탄사” “음- 아저씨라면 아저씨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 “... 뭐, 아저씨라고 정의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선배 얼굴 보고 아저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딱 잘라 이야기하는 미도리 앞에서 치아키는 푸슬푸슬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아직 반쯤 차 있는 맥주캔을 얼굴에 가져다대었다. “으아- 역시 덥긴 덥구나. 맥주도 금방 식는 것 같다!” 모리사와 치아키와 타카미네 미도리는, 열대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치아키는 냉방기구에 약했다. 에어컨을 들여놓기는 했으나 제습의 용도로만 주로 사용할 뿐 냉방으로는 잔기침을 하고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는 치아키 덕에 30분 이상을 틀어 놓을 수가 없었다. 일하는 곳에서는 냉방을..
옅은 풀잎 냄새와 아득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타카미네 미도리는 눈을 살며시 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탁상시계를 확인한 미도리는 '오늘 어쩌면 저 사람, 지각할지도 모르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잠금 장치가 고장난 화장실 문의 문고리를 잡아 돌려 문을 열자 보이는 광경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선배..." "흐으아갸갹!!! 아! 타가미네!! 일어났으아악!! 잠깐 눈!! 눈이!!" ".....하아, 또 비누로 머리 감고 있죠 진짜..." 갑자기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세면대 앞에서 펄쩍 뛰어올랐던 모리사와 치아키는 머리에서 흘러내려 눈에 들어간 비눗물 때문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급하면 차라리 드라이 샴푸 쓰랬잖아요..."..
장마철의 시작이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창밖을 확인한 타카미네 미도리는 신으려던 양말을 다시 서랍안에 넣어두고, 평소 신던 운동화 대신 샌들을 꺼냈다. 집에 다시 들어올 때 쯤이면 발은 물론이고 무릎 밑으로는 흠뻑 젖어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문고리를 잡았을 때 그는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문고리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놓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캐비닛을 열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수건들이 시야에 들어찼다. 대부분은 흰색이었으나, 색에 유난스레 의미부여를 하는 동거인 덕에 개중에는 눈을 찌를 듯이 채도가 높은 붉은색의 수건과 물에 녹색 물감을 살짝 풀어둔 듯한 연둣빛의 수건도 함께 섞여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어차피 더러워진 다리랑 발만 닦을 거니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