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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시노노메 에나는 닮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린 나는 에나에게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시노노메 에나는 어려서부터 나긋나긋 상냥한 아이는 아니었고 호불호가 확실했다. 나 역시 순해 빠져 누나 말이면 껌뻑 죽는 깜찍한 동생은 아니었지만 한 살 터울의 손위 형제가 식탁에서 오만상을 지으며 골라내는 야채를 따라 혐오하고, 단 것에 환장하는 모습에 역시 함께 포크를 들고서 들뜰 정도의 말랑함은 있었다. 물론 당근은 원체 끔찍할 정도로 맛이 없고 펜케이크는 그 반대다. 다만 그걸 나는 누구씨 덕분에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을 뿐이다.
시노노메 에나와 시노노메 아키토. 우리 둘 모두 시노노메라는 성을 이어받았음에도 재능만큼은 이어받지 못했다. 그러나 재능을 알아보는 눈은 타고났다.
한평생 천재라 불린 아버지는 처음 얻은 자식의 이름에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 재능의 이름을 붙였다. 뒤에 태어난 내게는 글쎄, 에나만큼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아버지의 에고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시노노메 가의 유일무이한 천재는, 곱지 않은 입버릇과는 별개로 처세에 능한 우리 남매와는 달리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당히 무심한 편이었다. 날 때부터 아버지처럼 종이 위에 선을 긋기 시작하던 에나가 저를 낳아준 천재와 달리 제겐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말을 고를 줄 모르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에나에겐 기만이었다. 일찍이 그림을 놓은 나와는 달리 이름대로 태어나서부터 그림을 놓은 적은 없는 에나의 그림은 주인의 인정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림을 놓지도 못하고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지도 못하는 에나가 자신의 어중간함에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나름 자신있어 하던 축구를 그만두었다. 너무나 선명한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축구는 즐거웠지만 잘했기 때문에 즐거웠던 것이므로 한계에 부딪혀가며 즐길 생각은 없었다. 어중간한 재능과 각오로 임할 바에야 빠르게 버리는 것이 현답이었다.
신경질을 내는 에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알맹이 없는 말들에 기뻐하며 SNS 계정을 굴리는 주제에 왜 내 말에는 귀를 닫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심 섞인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학을 떼며 피하기에 툭툭 시비걸 듯 던져야 듣는 척이라도 한다. 해야 할 말을 할 때의 말버릇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나랑 같이 싸우듯 대화하는 이 녀석 때문이다.
시노노메라는 성씨에 묶인 우린 천재에게서 태어나 천재를 알아보는 데엔 도가 텄고, 자신에게 없는 재능에 이끌리고 그 곁에서 끊임없이 내 것이 될 수 없는 타인의 재능을 갈망했다. 내가 RAD WEEKEND를 뛰어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된 후 길거리에서 홀로 라이브를 하던 토우야를 알아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토우야 역시 천재였으니까.
우린 분명 알맹이가 지독히 닮아 있었다.
그러나 항상 선택하는 나와 달리 에나는 선택 받는 쪽이었다. 나는 내 손으로 그림과 축구를 버리고 마이크를 잡았지만 에나는 아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받은 이름마냥 그림 외길이었다. 나는 내가 토우야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에나는.
에나가 유독 들떠 있던 날이 있었다. 어쩐 일로 기분이 좋은지 의아하긴 했으나 궁금하지는 않아 방에 들어가려는 나를 불러세워 어느 제과점의 단과자를 들이밀며 떠들기에 들어주었다.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팬아트를 맘에 들어해서 제게 컨택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시노노메 에나가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게 된 나는 얼결에 찾아낸 또 다른 공통점에 어이가 없었으나 이에 대해 별말은 얹지 않고 건성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에나의 그림을 알아봐 준 완전한 타인이 생겼다는 것이 에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때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에나의 발작이 잦아들자 느낄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평화로운 밤이 꽤나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그 평화가 박살난 밤에 잠시 에나의 방을 찾아가 몇마디 말을 붙이고 온 나는 도로 침대에 누워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씩씩대며 밤을 새울 그 녀석을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에 들었다. 또 선택받고, 내쳐진걸까. 짧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의 에나는 이전의 아티스트와 함께한다는 서클의 멤버들과 잘 지내는 것 같지만. 만날 때마다 나와 에나를 엮어 신나게 놀려먹는 아키야마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간다. 우리 둘이 닮았다는 건 당사자인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역시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건 묘하다.
어차피 꼰대들의 변화를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아오야기 토우야가 아오야기 하루미치와 결착을 지은 것처럼 시노노메 에나도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나 홀로 발버둥치던 에나에게도 동료라 할 만한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나는 그 든든함을 알고 있다. 좌우지간 나랑 닮은 그 녀석 역시 더는 히스테리 부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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