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미도] 장마철의 시작
장마철의 시작이다.
집 밖으로 나서기 전 창밖을 확인한 타카미네 미도리는 신으려던 양말을 다시 서랍안에 넣어두고, 평소 신던 운동화 대신 샌들을 꺼냈다. 집에 다시 들어올 때 쯤이면 발은 물론이고 무릎 밑으로는 흠뻑 젖어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문고리를 잡았을 때 그는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문고리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놓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캐비닛을 열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수건들이 시야에 들어찼다. 대부분은 흰색이었으나, 색에 유난스레 의미부여를 하는 동거인 덕에 개중에는 눈을 찌를 듯이 채도가 높은 붉은색의 수건과 물에 녹색 물감을 살짝 풀어둔 듯한 연둣빛의 수건도 함께 섞여있었다.
고민하던 그는 ‘어차피 더러워진 다리랑 발만 닦을 거니까...’라는 생각에 흰색 수건을 두 장 챙겨들었다.
접혀있는 수건을 들고 다시 화장실 밖으로 나온 그는 비 때문에 어둑해진 거실을 보고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즈음엔 바뀌어있을 거실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가방 안에 수건을 넣었다. 귀가하면 저보다 먼저 도착해 집안 곳곳의 불과 제습기를 틀어두고 저녁을 준비하는 동거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을 따라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씩 위로 동동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는 다시 한번 문고리를 잡아돌려 집 밖을 나섰다.
“선배... 이게 도대체 무슨....?”
“오! 타카미네!!!”
집안으로 들어오며 가방속에서 한번 사용해 축축해진 수건 옆에 아직까지 꽤나 뽀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수건을 꺼내들던 타카미네 미도리는, 수건으로 자신의 다리를 닦기 위해 상체를 숙이기도 전에 코 끝을 스치는 냄새에 멈칫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
명백히 무언가 타는 냄새였다.
“하하하... 그게 말이다...... 내가 오늘은 특별히 타카미네를 위해 피자를...”
“...... 봐봐요.”
다리와 발의 물기도 닦아내지 못한 채로 현관을 지나쳐 거실로 들어오자, 현관에서부터 나던 냄새뿐만 아니라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 있는 거실천장이 보였다. 호다닥 뒤에 따라 붙어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카미네 미도리의 손에 떨어질 듯 들려있는 수건을 빼앗아 본인이 닦지 않아 물이 뚝뚝 흐르는 다리를 닦아주려는 듯 무릎을 바닦에 대고 몸을 숙여 그 다리에 수건을 가까이했다.
“선배.....”
“.... 미안하구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숙이고 있던 몸을 움찔하더니, 오늘 저녁은 시켜먹어야 할 것 같다며 시무룩하게 말하는 치아키를 보며 한숨을 쉬던 미도리는 거실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치아키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아 들었다. 환풍기란 환풍기는 다 작동시켜두었다 외치며 재빠르게 몸을 날려 미도리 옆에 자리를 잡은 치아키는 미도리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미도리가 다리의 물기를 전부 닦아내자 팔을 크게 휘두르며 미도리에게 덤벼들었다.
“오늘도 수고많았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다! 배달음식이지만!”
“그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그보다 이 냄새랑 연기는 어느 세월에 다 빠진답니까... 라고 투덜대던 미도리는 집을 나서기 전에 상상하던 광경과 조금은 다른 거실 풍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몸에 엉겨붙은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미도리 자신의 체향이 생각난다며 애용하는 풀내음의 비누향과 탄 내가 섞여 미묘해진 향을 들이쉬며 치아키와 함께 맞이하는 첫 장마의 첫날이 뭔가 자신의 동거인답다 생각하면서.